'거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03 나실인 -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구별된 자 1
  2. 2011.05.24 거듭남의 본질


애스메랄다님의 질문 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실인(נזיר, nazir)은 히브리어의 '나지르'('분리하다, 절제하다'라는 뜻)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이러한 나실인은 성별에 관계없이 특정기간이나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기로 서원을 한 평신도(삼손, 사무엘, 레갑족속, 세례요한, 사도바울 등)입니다. 따라서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소산을 마실 수 없었으며(민수기 6:3-4), 머리를 깍을 수도 없고(민수기 6:5), 죽은 사람을 가까이 함으로서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를 할 수 없었습니다(민수기 6:6-7). 또한 몸의 거룩한 구별(민수기 6:8)과 도덕적 정결(아모스 2:11-12) 등을 지켜야 했습니다.

나실인이 지켜야할 규정은 특별한 방법으로 어떤 사물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시된 사물들은 그것 자체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나실인이 거룩함과 헌신을 추구할 때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열거된 것들입니다.


첫째는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물론이고 껍질이며 씨앗까지 먹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적 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세상적 쾌락으로 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포도주와 같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고조시키는 것등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 부터 돌이켜서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로부터 영혼의 양식과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이 나실인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의 금식 후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하시면서 세상적 쾌락과 포만감을 좇아살아가는 삶이 아닌 구별된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하십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가지게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에 귀결이 됩니다. 거룩한 삶의 구별은 그 자신의 수행적 삶을 살아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쾌락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하고 거룩하고 헌신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고 내가 즐기는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목적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여 따르는 성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실인과 같은 영적인 삶, 나실인과 같은 육적인 삶을 균형있게 가져야 하고, 또 그러기를 무던히 애쓰는 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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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본질

2011. 5. 24. 15:13

역자서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아는 자요, 그를 아는 자는 그와 한 몸이 되어 이미 연합한자(Union with Christ)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성령의 역사를 통해 믿음의 통로로 날마다 수혈받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 위해 호흡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갈 2:20) 

오늘날 한국 교회는 거듭남의 필요성과 본질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거듭남, 즉 중생은 칭의와 아울러 성화로 나아가는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칭의에 그쳐 버림으로써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를 상실한 듯합니다. 청교도들의 작품은 철저하게 칼빈주의이자 개혁주의적 신학에 입각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위상과 사역에 관하여, 인간의 정체성과 교회론과 앞으로 닥칠 종말론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되, 단순히 조직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깨닫고 인식하며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천신학적 맥락에서 이를 잘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거듭남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재하며 수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로마서 10장 10절의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성경구절을 통하여, 입술의 시인을 곧 거듭남을 체험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이렇게 따라 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단 종파중에는 입술로 고백한 이후 자신은 거듭남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범하는 죄는 죄가 아니고, 자신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거듭남에 대한 얄팍한 이해와 잘못된 가르침은 한국 교회가 썩어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기독교인의 삶의 질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창출시키고 있습니다.

스테판 차녹은 이 작품을 통하여 거듭남에 대한 정확한 본질과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거듭남과 칭의, 그리고 성화를 일목요연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즉, 이 세가지 구원족 요소는 상호 분리할 수 없는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거듭남에 대한 점검에 필요한 시금석으로서,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을 철저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이전에 좋아하였던 것들을지금은 혐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기점검(Self-Examination) 작업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금석, 즉


과연 내게 하나님과 닮아가기를 바라는 뜨거운 열망이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느정도인가? 내적이고도 영적인 의무들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 정도는? 내 마음과 생활에 어떠한 거룩함의 요소가 있는가? 

등과 같은 믿음의 시금석을 통해 거듭남에 대한 확신과 성화에 대한 갈급함으로 삶을 채워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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